(뉴스저널코리아) 김도영 기자 = 美, 韓정통망법에 '검열·빅테크 규제' 우려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통과 당시 국회 본회의장 [연합뉴스=뉴스저널코리아 자료사진]
미국 국무부 고위당국자가 한국 국회가 통과시킨 정보통신망법 개정안(허위조작정보근절법)에 대해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하면서 그 배경이 주목된다.
미국 재계에서 한국이 미국 기업을 차별하는 디지털 규제를 추진한다고 계속 주장하는 상황에서 나온 고위 당국자의 입장 표명이라 향후 이 사안이 외교·통상 문제로 비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세라 로저스 국무부 공공외교 차관은 30일(현지시간) 엑스(X·옛 트위터)에 "한국의 네트워크법(Network Act) 개정안은 표면적으로는 명예를 훼손하는 딥페이크 문제를 바로잡는 데 초점을 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며 기술 협력을 위태롭게 한다"고 적었다.
로저스 차관은 이어서 "딥페이크가 우려스러운 문제인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규제 당국에 관점에 따른 검열이라는 '침습적'(invasive) 권한을 주기보다는 피해자들에게 민사적 구제 수단을 제공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로저스 차관이 언급한 네크워크법은 지난 24일 국회를 통과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다.
이 법은 폭력이나 차별을 선동하는 정보를 불법정보로 규정하고 불법정보와 허위조작정보를 정보통신망에 유포하는 행위를 금지, 처벌하는 내용을 담았다.
또 대규모 정보통신망을 운영하는 거대 플랫폼 사업자에 불법·허위 정보 삭제 등 일정 법적 의무를 부과했는데 이는 유럽연합(EU)의 디지털서비스법(DSA)을 벤치마킹했다.
미국 입장에서 이 법이 반갑지 않은 이유는 온라인 콘텐츠 규제와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시각과 배치되는 데다 메타와 구글 등 미국 플랫폼 기업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온라인에서 소셜미디어 기업들이 혐오나 차별 조장 발언 등 유해 콘텐츠를 차단·관리하는 행위를 '표현의 자유 침해'로 규정하며 반대해왔다.
트럼프 행정부 인사들은 진보 성향의 소셜미디어 기업들이 우익 진영을 검열해 억압한다고 인식해왔는데 트럼프 대통령 본인도 2020년 대선 패배 후 지지자들의 의회 폭동을 조장하려고 했다는 이유로 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 사용을 금지당한 경험이 있다.
이들 빅테크 기업은 트럼프 대통령이 작년 대선에서 승리하자 엄청난 후원금을 내고 트럼프 대통령과 '화해'했으며 현재 트럼프 행정부는 이들 기업을 규제하려는 외국 정부의 시도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는 정보통신망법의 모델이 된 EU의 DSA가 메타와 구글 등 미국 기업을 겨냥했다고 보고 집중적으로 문제 삼고 있다.
미국 국무부는 지난 23일 DSA 제정을 주도한 EU 인사 5명을 비자 발급 제한 대상으로 지정했는데 당시 마코 루비오 국무부 장관은 5명에 대해 "그들이 반대하는 미국의 시각을 검열, 억압하고 수익 창출을 제한하기 위해 미국의 플랫폼 기업들을 강압하는 조직적 시도를 이끌었다"고 주장했다.
세라 로저스 미국 국무부 공공외교 차관 [국무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에 따라 향후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의 정보통신망법에 대해서도 EU와 유사하게 문제를 제기할지가 관건이다.
지금까지는 로저스 차관이 개인적으로 엑스에 올린 글 외에 백악관이나 국무부 등 행정부 차원에서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명한 경우는 확인되지 않았다.
또 EU의 경우 2023년에 도입한 DSA에 근거한 첫 과징금을 지난 5일 미국 소셜미디어 엑스에 부과하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대응을 초래했지만, 정보통신망법은 내년 7월 시행 예정이라 상황을 더 지켜보려 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 재계에서 계속 우려를 표하며 트럼프 행정부의 대응을 요청할 경우 이 사안이 양국 간 쟁점으로 부상할 여지가 있다.
미국 재계에서는 한국의 디지털 규제와 관련한 우려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보통신망법까지 통과되면서 미국 플랫폼 기업을 겨냥한 새로운 무역장벽이 생겼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미 재계 관계자는 연합뉴스에 "한국이 EU의 DSA 모델을 수입하면서 미국의 디지털 거버넌스 접근법과 갈수록 상충하는 규제 철학을 받아들이고 있다"면서 "특히 한국 정부가 미국과 복잡한 관세·무역 대화를 헤쳐 나가야 하는 시기에 새로운 비관세 장벽이 도입되면서 불필요한 마찰을 일으키고 기존 대화를 방해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정보통신망법 이전에도 트럼프 행정부와 미국 기업들은 한국의 온라인 플랫폼법 추진과 구글의 지도 반출 문제 등 디지털 규제와 관련해 지속해서 문제를 제기해왔다.
한국은 지난 14일 미국과 발표한 공동 팩트시트에서 "망 사용료, 온라인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과 정책에 있어서 미국 기업들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하고,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하여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고 합의했지만, 이는 한국 정부의 기존 입장을 확인한 것일 뿐 미국의 요구를 들어준 것은 아니었다.
온라인 플랫폼 규제의 경우 미국이 무역 협상 과정에서 강하게 압박하는 가운데 한때 추진력을 잃은 것처럼 보였으나 최근 쿠팡 사태를 계기로 오히려 규제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트럼프 1기 행정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로버트 오브라이언이 쿠팡에 대한 한국의 규제 움직임을 비판하고, 대럴 아이사 하원의원(공화·캘리포니아)이 언론 기고에서 한국이 미국 기업을 차별하는 반미 디지털 규제를 추진한다고 주장하는 등 외곽에서 이슈에 불을 지피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미국 정부도 한국 내 디지털 규제 동향을 주시하고 있다.
미 국무부는 지난 10일 열린 제10차 한미 고위급 경제협의회(SED)에서도 디지털 분야 입법에 대한 우려를 한국 측에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뉴스저널코리아) 김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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